화자 소개 / Speaker Introduction
강남규(Kang Nam-kyu) – 제주4·3진상규명운동의 핵심 활동가
강남규는 1970년대 말부터 제주지역 노동운동을 펼쳐온 활동가로, 1989년 제주4·3진상규명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끈 중요 인물이다. 4·3 공동준비위원회의 상임대표를 역임했으며, 제주4·3연구소 설립에 참여했고, 4월제(4·3추모제) 조직화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노동상담소 운영을 통해 제주지역 사회문제 해결에도 헌신해왔다.
개인적으로는 4·3의 피해를 직접 경험한 세대이다. 유수함도(현 수산면)가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아버지 쪽, 그리고 외가 쪽에서 더욱 심각한 4·3 피해를 입었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눈물과 외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가 소녀 가장이 되어 네 남매를 키워낸 경험 속에서 4·3의 비극을 체화해왔다.
증언 개요 / Testimony Overview
이 증언은 2020년 10월 27일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된 88분 분량의 인터뷰다. 강남규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자신의 삶의 여정 속에서 4·3 문제와의 만남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증언의 주요 구성:
- 개인적 배경과 4·3과의 만남 – 가족 내 4·3 피해의 기억과 영향
- 노동운동 경로 – 1976년부터 시작된 노동운동과 토지투기 문제 조사
- 4·3진상규명운동으로의 전환 –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변화
- 제주4·3연구소 설립과 활동 – 1989년 5월 설립과 역할
- 4월제 공동준비위원회와 추모제 조직화 – 1989년 4월 1일 첫 추모제 개최
- 유족회와의 관계 및 단체 활동 –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
- 4·3 문제에 대한 성찰과 메시지 – 생명 존중의 철학
핵심 주제 / Key Topics
1. 개인적 4·3 경험과 기억 / Personal 4·3 Experience and Memory
강남규의 4·3 인식은 가족사에서 비롯된다. 아버지의 고향인 유수함도는 4·3 당시 상당한 피해 지역이었으며, 숙부는 해병대 시절 돌아가신 분이다. 특히 외가의 피해가 더욱 컸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사건으로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도 부친께서 돌아가신 후 일찍 따라가셨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어린 소녀 가장이 되어 네 남매를 키워냈다. 외증조부(祖父의 祖父)는 당시 탐라정부 사장을 지내신 분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도를 다시 방문할 수 없다고 말씀할 정도로 4·3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계셨다. 이러한 가족사 속에서 강남규는 어릴 때부터 4·3과 분리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English: Strong personal experience rooted in family history. Both paternal and maternal families suffered significant losses during 4·3. Maternal grandfather passed away as a result of the incident, leading his mother to become the breadwinner for four siblings at a young age. These family memories formed the foundation of his commitment to the 4·3 truth-finding movement.
2. 노동운동 경로와 4·3과의 연결 / Labor Movement and Connection to 4·3
강남규는 1976년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울의 영등포 지역에서 기술을 연마했으며, 1978년 전후로는 동대문 추적 사건과 관련되어 불법 수배를 당했다. 이후 수배가 해제되고 제주도에 내려온 후 1989년 4월 21일 노동상담소를 설립했다. 제주도 하간연구 제주사회문제연구소가 설립되기도 한다.
강남규는 노동운동이 곧 4·3진상규명운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단순히 노동도를 버리고 3진상규명운동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두 운동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지투기 문제 조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제주 지역의 토지 문제는 4·3 이후의 사회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
English: Labor activism from 1976 onwards. Experience with underground activism and exile in the early 1980s. Returned to Jeju and established the Labor Consultation Center in April 1989. Integrated labor movement and 4·3 truth-finding as interconnected struggles. Land speculation research (conducted with other activists) became an important documentation of post-4·3 social transformations.
3.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변화 / Post-June 1987 Uprising Transformation
1987년 6월 항쟁은 제주 지역의 4·3진상규명운동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이전까지는 4·3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거의 불가능했으나, 항쟁 이후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와 함께 많은 단체들이 새로이 태어났다.
당시 제주 지역의 재야 단체들은 “4·3을 그냥 보낼 것인가, 우두 버려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추모제 공동개최를 제안했다. 이는 1987년부터 시작되어 1989년 4월 1일 제주도 최초의 공식적인 추모제 개최로 이어졌다. 당시 추모제는 매우 성대한 행사로, 시민들의 광범한 참여가 이루어졌다.
English: The June 1987 Uprising created unprecedented opportunities for public discourse on 4·3. Civil society groups began organizing jointly to commemorate the incident and demand truth-finding. The first officially organized Jeju 4·3 Memorial Service took place on April 1, 1989, marking a watershed moment in the movement’s public visibility and social impact.
4. 제주4·3연구소 설립과 역할 / Establishment of Jeju 4·3 Research Institute
제주4·3연구소는 1989년 5월 10일 공식 출범했다. 설립 이전인 1989년 4월 1일에 추모제 준비가 먼저 이루어졌고, 설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강남규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연구소 설립을 위해 정치 · 학문적 준비를 함께 진행했다.
제주4·3연구소의 설립은 제주지역 재야단체와 학자들의 결합이었다. 당시 제주4·3대책협의회 이사장이었던 정량을 장관(현 한영 선생)이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강남규는 연구소의 발굴 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발굴 일지 작성, 위증 발굴 메뉴얼 개발 등 체계적이고 투명한 기록 관리를 강조했다.
다만 강남규는 연구소가 현재 직면한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학술 연구와 운동적 성격 사이의 방향 설정, 그리고 새로운 사업 모델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nglish: Official establishment on May 10, 1989, followed groundwork initiated in April. Kangnam-kyu contributed to the Institute’s survivor documentation projects and emphasized systematic record-keeping methodology. The Institute emerged as a coalition of civil society groups and scholars. Current challenges include clarifying the balance between academic research and activist engagement, and developing sustainable new initiatives.
5. 4월제 공동준비위원회와 추모제 조직화 / April Ceremony Joint Preparation Committee and Memorial Organization
4월제 공동준비위원회는 각 단체의 중심 인물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강남규는 1989년 4월부터 참여하여 1990년까지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상임대표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는데, 특히 유족회와의 관계 조정이 핵심이었다.
당시 유족회가 “반공 유족회”라는 명칭으로 출범하면서 이념적 논쟁이 있었다. 4월제 공동준비위원회는 유족회와의 “단일 대오”를 유지하면서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이중 아젠다를 일관되게 추진했다. 정부 당국도 “싸우지 말고 단일 대오를 가져와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회는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 “4·3사건 관련 유족회”, “제주4·3 희생자 유족회” 등으로 변화했다. 이는 정의의 여지를 남겨두고 진상규명을 지향하는 과정이었다.
English: The Joint Committee for the April Ceremony was composed of representatives from various civil society groups. Strong-kyu served as Standing Representative (1989–1990), playing a crucial role in negotiating relationships with survivor groups. The Committee maintained a unified front while pursuing twin agendas of truth-finding and honor restoration. It successfully navigated ideological tensions and contributed to the naming evolution of survivor organizations.
6. 토지투기 문제와 사회 조사 / Land Speculation and Social Investigation
강남규와 동료들은 당시 제주도의 토지투기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수행했다. 이 조사는 1985년 경부터 시작되어 나중에 학술 자료로도 인정받았다. 학생운동 권에서는 이 자료가 “필독서”로 취급되기도 했다.
조사 방법은 자동차나 전화, 핸드폰도 없던 시대에 발로 뛰며 현장 조사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1980년대 한국 사회운동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토지투기 조사는 4·3 이후 제주 지역의 사회 변화와 피해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English: Systematic field investigation of land speculation and development issues in Jeju. Research conducted from mid-1980s onwards through grassroots fieldwork. Work was recognized as authoritative in student activist circles. Land speculation research revealed structural connections between post-4·3 social transformations and ongoing victimization of the populace.
7. 생명 존중과 4·3 문제에 대한 철학 / Life-Centered Philosophy on the 4·3 Question
강남규의 증언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4·3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그는 4·3 문제를 “생명의 문제”로 본다.
“한 생명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만이 아니라, 또 그 언저리에서 주변에서 4·3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 모든 생명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이는 단순한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넘어, 4·3이 야기한 구조적 폭력과 그로 인한 모든 생명의 훼손을 직시하겠다는 다짐이다. 4·3은 정치적 진상규명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생명 존중의 철학을 요구하는 과제다.
그러므로 “평안”과 “화해”는 더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4·3과 관련된 생명체에 대해 살아있는 것에 대한 운동”으로 인식하고, “정말 조심스럽게, 그리고 경외한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남규는 강조한다.
English: The 4·3 question fundamentally concerns the sanctity of human life. All victims—both those who died and those who suffered in surrounding circumstances—must be honored equally. Truth-finding and honor restoration are not merely political tasks but ethical imperatives rooted in respect for life. Reconciliation and peace must be grounded in this deeper philosophical commitment. The 4·3 movement is ultimately a struggle for the dignity and protection of all human life affected by the inc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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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ource
영상 정보:
- 제목: 2020년 4·3진상규명증언채록 - 강남규 편(1편)
- 일시: 2020년 10월 27일
- 장소: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사무실
- 러닝타임: 약 88분
- 영상 URL: https://www.youtube.com/watch?v=OYvpUjrlcpU
- 출처: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자막 정보:
- 자막 파일명: 2020_강남규.txt
- 처리 일시: 2026년 4월 8일
이용 방식: 이 증언채록은 제주4·3 진상규명 운동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학술적, 교육적 목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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