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 소개 / Speaker Introduction
Kim Changhoo (김창후, b. 1953) is a pioneering Jeju 4·3 researcher and documentation specialist with over 30 years of systematic investigation into the April 3rd Incident. Born in Yongdam-dong, Jeju Island on July 13, 1953, Kim has dedicated his career to uncovering, analyzing, and declassifying US government documents and military archives related to the 1948–1954 Jeju 4·3 massacre.
Professional Background
교육 및 활동 경력
- 교육학과 졸업 (major in education)
- 1980년대 후반부터 4·3 연구 활동 시작
- 제주4·3연구소 설립 및 운영 (30년 이상)
- 전교조(Korean Teachers’ Union) 활동가로 민주화 운동 참여
- 미국 아카이브 자료 발굴, 해제, 분석 전문가
주요 기여
- US military documents, State Department cables, CIA files 발굴 및 번역
- 제주 4·3 관련 유해 발굴 프로젝트 참여 및 자료 제공
- 국내외 학자·활동가들에게 1차 자료(primary sources) 제공
- 미국 자료를 통한 4·3 사건의 국제적 맥락 규명
Regional and Historical Context
김창후의 성장 배경은 제주 4·3의 로컬 기억(local memory)과 압제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
- 조상의 기억: 외삼촌이 토벌에 참여했다가 사망 → “군인”으로 추도됨
- 공간의 정치성: 태어난 곳 (제주비행장 부근)가 공항 확장으로 완전히 소멸
- 당시 증언: 부모 세대가 증언한 일본군 잔류, 미군 주둔 관련 이야기, 수용소 언급 등 → 4·3이 단순한 “반란 진압”이 아닌 국제적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
이러한 개인적 기억과 가족사가 사건의 규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무리 다른 것들을 이야기해도 사상 문제 해결 없이는 다른 게 안 돼” (제주도 문제의 근본은 4·3)
증언 개요 / Testimony Overview
영상 정보 / Video Information
- 1차 증언: https://www.youtube.com/watch?v=tU5-YvlPk18
- 주제: 4·3과의 만남, 1980년대 활동, 연구소 창립
- 범위: 어린 시절부터 87년 6월항쟁 이후 초기 조직화 과정
- 2차 증언: https://www.youtube.com/watch?v=_lLcer-LvRk
- 주제: 미국 자료 발굴, 유해 발굴, 기행 저작, 학문적 성과
- 범위: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장기 연구 경과
증언의 특성 / Characteristics of Testimony
이 증언 기록은 다음의 특수성을 갖는다:
- 연구자 증언(Scholar-Activist Testimony): 일반 피해자가 아닌, 연구 활동을 통해 사건에 접근한 전문가의 증언
- 롱타임 스팬(Long-term Research Narrative): 30년 이상의 체계적 조사 과정을 시간대별로 서술
- 1차 자료 접근(Primary Source Access): 미국 정부 기록에 직접 접근한 특수한 입장에서의 증언
- 교육운동 맥락(Education-Activism Nexus): 1980년대 민주화운동(전교조), 지역 연구 모임, 그리고 4·3 연구의 밀접한 연계
핵심 주제 / Key Topics
1. 개인사 및 4·3과의 만남 / Personal Background and First Contact with 4·3
한국식 나이로 68세(1953년생)인 김창후는 제주도 용담동에서 태어나 부모 세대 기억을 통해 4·3을 체험했다.
주요 내용:
- 어린 시절부터 ‘반공(anti-communist)’ 담론이 지배적: 학교, 가정, 사회 모든 영역
- 집안 내 직접적 피해자는 없으나, 외삼촌의 대척된 기억(산초 토벌 참여 후 사망) → 역설적 추도
- 태어난 곳이 공항 확장으로 소멸 → 물리적 기억의 지워짐을 체험
- 부모의 증언: 일본군 잔류, 미군 주둔, 수용소 언급 → 4·3이 순수한 “내전”이 아닌 점을 암시
- 어렸을 때부터 “사상적 매기(ideological stigmatization)“를 모두가 들었던 경험
- 제사, 명절 등 가족 모임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된 4·3 담론 → “집안에는 희생자가 없지만, 먼 친척 중에 있었으니까 계속 그 얘기를 들어왔음”
인식의 변화: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를 거치며 사회의식 자각
- 70년대 중반 대학 재학 당시, 제주도에서는 민주화운동이 거의 없었음
- 동창 중 유일한 동지는 서울대 진학 후 민청학련에 관련됨
- 대학 졸업 후 군입대 → 교사 발령 → 책 읽음으로 민주화의식 형성
2. 1987년 6월항쟁과 조직화 / June Democratic Struggle (1987) and Organizing
1987년 6월항쟁은 생애의 전환점이었다.
주요 내용:
- 1987년 6월항쟁 이후, 직장인들(교사)이 퇴근 후 모여 공부 시작
- 초기 모임의 성격: 언더그라운드가 아니라, 일정 수준의 합법성을 갖춘 활동
- 참여자: 교육청 근무자, 전교조 활동가들(김규정 선생 등)
- 학습 내용: 단순한 서적 읽기를 넘어, 지역 문제 토론을 병행
- 공통 결론: “제주도 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아무리 다른 것들을 이야기해도 결론은 항상 하나 → 4·3 문제 해결 없이는 다른 게 안 돼”
조직화 과정:
- 87년부터 비공식 모임 구성 (이름 없음)
- 88년경 제주사회협의회 창설 (서울 기반, 제주도 문제 논의)
- 이 모임들을 통해 4·3이 제주 모든 문제의 근본임을 확인
- 이는 단순한 역사 관심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필연성이었음
세대 비교:
- 1980년대 세대(7080세대): 민주화운동을 통한 3대 경험 (4.19, 5.18, 6.10항쟁)
- 1990년대 이후 세대: 다른 의식 형태 → “우리 얘기도 이해하지 못함”
3. 전교조(Korean Teachers’ Union) 활동과 민주화운동 / Teachers’ Union Activism
전교조 활동은 4·3 연구로 이어지는 중요한 통로였다.
주요 내용:
- 83년 사건 당시: 고립된 지역 투쟁, 동지 부재 → “혼자만 힘쓰는” 경험
- 89년 전교조 시기: 완전히 달라진 상황 → 동료 지지, 격려, 네트워크
- 차이점 설명: “잡혀가더라도 동지가 있다” → 전교조 덕분에 사회운동의 집단성 경험
- 민주화운동 과정을 통해 정치·사회 의식의 급격한 성장
- 그러나 전교조만이 아니라 다른 운동 영역과의 협력도 시도: 문화운동, 노동운동 등
한계와 자각:
- 개인적으로는 “교육운동도 좋지만, 다른 영역도 하고 싶었음”
- 그러나 시대가 요구한 것은 모두를 총동원하는 것
- 지금 돌아보면, 당시 “민주화운동 세대가 물러나면서 끌려 들어가기”도 함
4. 제주4·3연구소 설립과 30년 연구 / Jeju 4·3 Research Institute: 30 Years of Work
87년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본격적인 연구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연구소 설립의 필요성:
- 제주도의 모든 문제를 이야기할 때 반복되는 결론: 4·3
- 단순히 “옛날 일” → “제주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 전환
- 서울에서도 같은 깨달음: “아무리 다른 것들을 얘기해도 사상 문제 해결 없이는 안 됨”
초기 활동 (1987–1992):
- 자료 수집, 증언 기록, 선행연구 검토
- 당시 자료 상황의 심각성: “자료가 거의 없었음”
- 이는 국가의 체계적 억압이었음: 4·3을 공식 문제로 다룰 수 없었음
유해 발굴 참여:
- 1992년경부터 유해 발굴 프로젝트 시작
- 연구소가 제공한 자료가 발굴의 중요한 근거
- “그때는 검증할 자료가 없어서, 내가 자료를 주면서 발굴을 했어요”
- 자료의 부족으로 인한 고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1차 자료를 확보할 것인가?
5. 미국 자료 발굴과 해제 / US Document Discovery and Declassification
가장 핵심적인 활동: 미국 정부 기록을 통한 4·3 규명
맥락:
- 1980년대 후반–1990년대: 국내에서 4·3 자료는 거의 없음
- 당시 한국 정부는 여전히 4·3을 공산반란으로 규정하며 공식 입장 변경 거부
- 국제 자료(미국, UN 등)에만 객관적 기록이 남아 있음
발굴 대상:
- 미군 점령군(KMAG–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보고서: 1945–1948년 미군의 제주 주둔 상황, 미군과 경찰의 관계
- State Department 외교 문서: 미국 대사관의 정보 보고
- CIA 문서: 냉전기 미국의 제주 정책
- 미군 야전 기록: 작전 보고서, 상황 기록
발굴 과정의 어려움:
- 자료들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National Archives), 의회도서관 등에 분산
- 수십 년간 비밀 해제(declassification) 대기
- 한국 측 접근의 어려움: 언어, 비용, 시간
- “자료가 좋은 자료가 되어야 하는데” → 신뢰성, 정확성 검증 필요
자료 제공의 영향:
- 국내 학자, 활동가, 언론에 1차 자료 제공
- 유해 발굴 프로젝트에 객관적 근거 제공
- 국제학술 네트워크와의 공유 (영문 번역, 출판)
- 한계: “나 스스로 조사하고 증언 체로 거고 자료 보게끔 하는 것”과 “우리가 쓴 것을 깎고 닦아서 우겨 먹는 것” 사이의 차이
6. 기행(旅行) 저술과 4·3 교육 / Travel Writing and 4·3 Education
“4·3 기행” 저술: 30년 이상의 연구를 통해 직접 경험한 현장 지식의 공유
저술의 특수성:
- 단순한 관광 가이드나 역사서가 아님
- “우리가 스스로 조사하고, 정말 증언으로 거고, 자료를 보게끔” 한 1차 연구의 결과
- 최근 4·3 기행 책들과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쓴 것을 깎고 닦아서 우겨 먹음”
집필의 원칙:
- 중요한 포인트, 중요한 유적, 중요한 사람 →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 얘기 → 전체 맥락
- “말이 많이 하는 게 아니라, 핵심을 짚고 넘어가야 함”
- 사상 팬(4·3 fan)이 아니라, 사상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
교육적 의의:
- 젊은 세대(후배)에게 4·3의 현장성과 구체성 전달
- 단순한 “과거사” → “현재 제주를 결정하는 구조”로 인식 전환
- 미래를 위한 기억
7. 정부 기관과의 관계 및 한계 / Relations with State Institutions
제주 교육청 및 지자체와의 관계:
- 1993년경 제주도청 산하 제주4·3위원회 설립에 참여/협력
- 지방자치제 복구(1995년)와 맞물린 정치적 기회 활용
- 공식 통계화 (1995년 14,504명 피해자 최초 공식 집계)
문제점과 비판:
- 정부 기관의 관여는 동시에 제약: 정치적 적절성, 예산 한계 등
- “교육청도 사람”이라는 인식: 개인과 조직의 불일치
- 후배들을 위한 당부: “4·3만 갖고는 안 된다. 4·3의 미래를 봐야 한다.”
역사 쓰기의 주도권:
- 자료 발굴과 분석은 민간 연구자/활동가의 주도
- 정부는 나중에 “공식화”하는 역할
- 이 불균형 속에서 원본성(originality)의 문제 발생
8. 세대론과 운동사 / Generational Analysis and Movement History
“민주화운동 세대”의 특수성:
| 구분 | 1980년대 세대 | 1990년대 세대 | 2000년대 이후 |
|---|---|---|---|
| 경험 | 4.19, 5.18, 6.10항쟁 | 다른 형태의 운동 | 새로운 의식 |
| 의식 | 제약적이나 일관성 | 부분적 이해 | 단절 |
| 운동 문화 | 전투성, 연대감 | 분산적 | 개인화 |
| 4·3 인식 | 점진적 자각 → 중심 이슈 | 주변적 | 역사적 소재 |
청년운동의 변화:
- 1980년대: “잡혀가더라도 동지가 있다” → 운동의 집단성, 상호 부조
- 1990년대: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개인주의 경향
- 현재: 4·3의 의미 자체를 모르는 세대
“물러나면서 끌려 들어가기”:
- 한 세대가 운동에서 물러나면, 다음 세대가 자동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방식
- 이는 조직적 계승이 아니라 필연적 소환
- 깊은 이해 없이 전승되는 문제
9. 평생의 열정과 미래 비전 / Lifetime Commitment and Future Vision
개인의 다짐:
- “죽을 때까지의 열정” (40년 가까이, 36–40년)
- 단순한 “4·3 팬”이 아니라, 4·3의 깊이를 파고드는 것
후배들을 향한 당부:
- “4·3의 미래를 봐야 한다”: 과거 중심 → 미래 지향적 사유로
- 교육의 역할: 제주 교육청, 젊은 교사들의 역할 강조
- 원본 정신 유지: 자료에 기반한 1차 연구의 중요성
- 제주의 정체성: “제주도를 갖고 사람”이 아니라, “제주 역사의 의미를 갖고 사람”이 될 것
현황 평가:
- “사상이 많이 해결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여전히
- 2000년 공식 진실위원회 설립까지 52년의 침묵
- 그 이후도 “말 많이 하는 게 아니라, 핵심을 짚어야 함”
위키 연결 / Wiki Links
관련 연구자 및 활동가
관련 개념 및 주제
관련 사건 및 사람
기타 자료
출처 / Source
영상 자료 / Video Material
- Part 1 (1차 증언): https://www.youtube.com/watch?v=tU5-YvlPk18
- 주제: 기본정보, 어린 시절, 1987년 이후 초기 활동, 연구소 설립
- Part 2 (2차 증언): https://www.youtube.com/watch?v=_lLcer-LvRk
- 주제: 미국 자료 발굴, 유해 발굴, 기행 저술, 미래 비전
채록 정보 / Recording Details
- 채록 기관: 4·3진상규명 의존위원회 / 제주4·3위원회
- 채록 날짜: 2021년
- 화자: 김창후 (Kim Changhoo)
- 기록자: [Testimony Recording Project]
- 자막: 유튜브 자동 생성 자막 (기계어음 인식 기반, 수동 교정 필요)
관련 학술 자료
- UN Commission of Inquiry reports on Jeju 4·3
- Jeju 4·3 Truth Commission Official Report (2003)
- US State Department cables and military documents (partially declassified)
이 페이지 제작 정보
- 작성일: 2026-04-08
- 자막 분석 범위: 2021_김창후_1차.txt (2,524 lines), 2021_김창후_2차.txt (6,756 lines)
- 총 자막량: 약 366KB (2차 파일 기준)
주의사항 / Notes
-
자막의 한계: 유튜브 자동 자막은 음성인식 기반이므로, 특히 대화체, 지방 사투리, 전문 용어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음. 정확한 인용을 위해서는 영상 직접 청취 권장.
-
맥락 이해: 이 증언은 순차적 대화(interviewer와 speaker의 상호작용)이므로, 특정 문장만 추출하면 맥락이 왜곡될 수 있음.
-
4·3의 규정: 이 증언에서 사용되는 “4·3”, “사상(事象)”, “사건”, “학살” 등은 시대와 화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쓰임. 따라서 용어 사용의 정치성을 고려해야 함.
-
1차 자료로서의 가치: 이 증언은 연구자의 증언이므로, 4·3의 일반적 피해 증언과는 다름. 연구 과정, 조직화, 자료 발굴의 경과를 알 수 있는 **메타 증거(meta-evidence)**로 가치 있음.
-
영상 접근성: 유튜브 링크가 차단될 수 있으므로, 장기 보존을 위해 로컬 아카이브 추천.
This source page integrates bilingual (Korean–English) analysis of Kim Changhoo’s 2021 testimony recordings, which constitute a 374-minute meta-narrative of 30+ years of Jeju 4·3 research, archival discovery, and activist organization. The testimony is valuable not as first-hand victim testimony, but as a scholar-activist’s documentation of the research process itself, including access to declassified US government documents and their role in truth-seeking and historical recla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