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문경수(Mun Gyeongsu, 1950년생)는 일본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学) 특임교수로서 재일조선인, 한일 관계사, 그리고 제주4·3사건의 초국적 차원을 전문으로 하는 한일 근현대사 연구자이다. 제주4·3사건이 단순한 한반도 내 사건이 아닌 동아시아 냉전체제와 포스트식민 상황이 얽힌 ‘초국적 기억 운동’임을 주장하는 핵심 학자 중 한 명이다.
논문 목록
| 제목 | 발표년 | 학술지 | 쪽수 | 핵심주제 |
|---|---|---|---|---|
| 냉전체제와 재일조선인 — 포스트 식민주의와 냉전 | 2017 | 4.3과 역사 17호 | 285-300 | 1947년 외국인등록령과 재일제주인의 ‘외국인화’ 과정 |
| 4·3과 재일 제주인 재론(再論) — 분단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 | 2019 | 4.3과 역사 19호 | 89-105 | 밀항 증언, 재일동포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배제 극복 |
논문별 분석
1. 2017년 논문: 냉전체제와 재일조선인 — 포스트 식민주의와 냉전
핵심 논점
이 논문은 1947년 외국인등록령(ポツダム勅令207号)의 제정 과정을 분석하여, 일본의 전후 민주화가 역설적으로 재일조선인을 “국민”에서 배제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식민주의의 지속”과 “냉전”의 이중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주요 구성과 논의
Ⅰ. 들어가면서―재일조선인의 1947년
- 1930년대 중반 제주도 인구의 약 1/4(5만 명)이 오사카에 정주(定住)
- 8·15 해방 후 약 150만 명 귀환, 60만 명 일본 거주 “정주자”로 남음
- 1947년: 외국인등록령으로 상징되는 “외국인화(外国人化)” 과정의 전환점
Ⅲ. 해방직후 일본의 조선관―식민주의의 지속
- 메이지유신 이래 조선인은 전통(神功皇后의 정복 대상)과 근대(미개/야만) 이중으로 차별화
- 전후 조사(1949): 일본인 학생의 한국인 호감도가 1939년 5위에서 15위로 급락
- “일본인 학생의 여러 민족에 대한 호감도” 조사 결과, 조선인에 대해 “교활하다” “속이 검다” 등 부정적 평가 압도
Ⅳ. 외국인등록령(1947.05)의 제정
- GHQ 초기 기본지령(1945.11): 조선인을 “해방국민”으로 대우
- 1946년 중반 이후 재입국 금지 방침으로 전환
- 1948년 교육투쟁 격화 → “치안” 이유로 외국인등록령 강행
- “推定(견なし) 규정”으로 법적 일본국민인 재일조선인을 외국인 관리 대상화
Ⅴ. 한신(阪神) 교육투쟁
- 해방 2년간 민족학교 541개교, 학생 57,961명 설립
- 1948년 1월 문부성 통달로 조선학교 폐쇄 시작
- 1948년 4월 고베 비상사태, 16세 소년 김태일 사망, 오사카 3만여 명 시위
인용
“재일조선인의 외국인화는, 그러한 새로운 국민형성의 과정에서 ‘국민’의 의의를 좁히고, 재일조선인을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전후’적 가치가 미치지 못할 사각에 쫓아 보내는 일이었다.” (p.286)
2. 2019년 논문: 4·3과 재일 제주인 재론(再論) — 분단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
핵심 논점
2001년 4·3특별법 제정 후 18년간의 성과를 검토하면서, 한국 내 공식적 4·3 문제해결이 “국가 정체성” 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배제 논리를 내포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특히 재일동포사회에서 좌우 이념 진영을 모두 포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한다.
주요 구성과 논의
Ⅰ. 들어가면서
- 2001년 ‘4·3과 재일 한국인’ 논문 발표 후 20년 경과
-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사과, 2019년 “4·3의 완전해결” 언급
- 그럼에도 재일동포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다양성이 공식 기준에서 배제됨
Ⅱ. ‘밀항’의 실상
- 1945.12 미군정 요청으로 GHQ 1946.3 재입국 금지
- 1946년 중반부터 본격 단속, 적어도 2만 2천 명 이상 밀입국
- 1947년 외국인등록령 후 통계적 적발은 70% 수준
- 김민주 증언: “제주청년 약 3000명이 해방 후 일본으로, 주로 1947년이었다”
Ⅲ.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삶
- 무장대 지도자와 친인척 다수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 조직 참여
- 1950년대-1970년대 조선적(총련) 세력이 한국적(민단) 세력을 압도
4·3위원회 희생자 기준(2002)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 자는 희생자에서 제외한다”
- 이는 “분단의 현실”을 전제한 국가 이데올로기 천명
- 재일동포사회(남북이 하나의 생활공간) 현실과의 괴리 야기
인용
“4·3당시 죽음의 땅을 떠나 일본에 건너간 제주인들 중에는 이북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생활 세계 속에서 재생의 길을 밟게 된 제주인이 적지 않다.” (p.91)
통합 분석: 냉전·포스트식민·디아스포라의 삼중 프레임
1. 포스트식민 상황의 심화
두 논문을 관통하는 핵심은 일본의 전후 “민주화”가 역설적으로 식민주의 논리를 연속시켰다는 주장이다:
- 1910-1945: 제국주의 식민지배
- 1945-1952: GHQ 점령 하에서 재일조선인의 “외국인화” 진행
- 1952 이후: 단독강화조약으로 법적 국적 박탈, “정주권 없는 정주자” 상태 고착
외국인등록령은 단순한 행정조치가 아닌, 전후 일본이 “새로운 국민”(민주화되고 평화로운)을 만들면서 재일조선인을 그 국민의 “외부”로 구성하는 과정이었다.
2. 냉전의 이중성: GHQ의 “기회주의”
문경수는 GHQ의 정책을 “치안 상의 관점만 선행하는 일종의 기회주의”로 평가한다:
- 초기: 조선인을 “해방국민”으로 포용하려는 가능성 (미국 정부의 일부)
- 중기(1946): 한신 교육투쟁과 재일조선인운동의 일본 공산당 연대 → 냉전적 위협 인식
- 후기(1947-1952): “치안”을 명목으로 재일조선인의 “외국인화” 수용
이는 동아시아 냉전 구축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과 재일조선인 배제가 동일한 메커니즘임을 보여준다.
3. 초국적 디아스포라의 ‘배제되지 않는 현존’
2019년 논문은 2001년 4·3특별법 제정이라는 제도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사회의 현실이 여전히 배제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 이데올로기적 배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국가 정체성 기준으로 좌파 성향 희생자 배제
- 초국적 현실: 남북한을 동시에 생활공간으로 하는 재일동포사회는 “분단 논리”의 틀을 벗어남
- 미해결의 과제: 4·3 “완전해결”은 국가 경계 내 (한국) 해결과 초국적 (일본 속 한반도) 해결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
4·3 위키 연계
이 두 논문은 다음 항목들과 직접 연결된다:
엔티티 링크
- 재일제주인 — 정주 공동체에서 난민으로, 다시 정착민으로의 변화
- 외국인등록령-1947 — 법적 배제의 제도적 시작점
- 한신-교육투쟁-1948 — 재일조선인의 저항의 고전적 사례
- GHQ — 냉전 구축자로서의 역할
테마 링크
- 냉전-동아시아-분단 — 1945-1952 점령기의 구조
- 포스트식민-기억정치 — 국가 정체성과 배제의 논리
- 밀항-생존-선택 — 개인의 선택과 구조적 강제
증언자 및 인물
- 김민주 (밀항자 증언)
- 김시종 시인 (1949년 밀항, 총련 활동가)
- HARUKO/鄭秉春 (여성 밀항자, 6회 왕복)
- 고난희 (무장대 연락원)
학술적 의의: Memory Studies와 초국적 기억
1. 기억의 “이동(移動)” 개념
문경수의 연구는 4·3의 기억이 다음과 같이 “이동”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제주도(사건 현장)
↓
밀항과 일본 정착(1947-1950)
↓
재일동포사회(이데올로기적으로 분화된 기억 공동체)
↓
2001년 4·3특별법 제정(제도적 기억화)
↓
2019년 현재(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해결)
2. “조용한 기억”, “금지된 기억”의 문제
2019년 논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재일동포사회에서 4·3을 체험한 사람들이 수십 년간 침묵해 왔다는 사실이다:
- 재일 시인 김시종: 49년 밀항 후 수십 년간 4·3을 창작의 중심으로 삼지 않음
- 원인: 분단 이념과 국가 정체성의 배제 논리 때문에 “말할 수 없었던” 기억들
- 2000년대 이후 증언 채록의 의미: “침묵의 파괴”로서의 기억 행동
3. Memory Studies 패러다임의 전환
이 두 논문이 제시하는 것은 4·3을 “민족사적 사건”에서 “냉전 기억의 초국적 구성”으로 재프레임하는 작업이다:
- 개별 국가(한국) 중심 기억에서 → 동아시아 냉전 구조 내 기억으로
- 단선적 역사 서술(민족 독립 → 국가 건설)에서 → 배제와 포함, 침묵과 발언의 구조로
- “완전한 해결”의 신화에서 → “영구적으로 미해결인 초국적 기억”의 현실로
서지사항
원문
-
문경수 (2017). 「냉전체제와 재일조선인 — 포스트 식민주의와 냉전」, 『4.3과 역사』 17호, pp.285-300.
- 학술지: 제주4·3연구소 발행
- ISSN: 1599-3345
-
문경수 (2019). 「4·3과 재일 제주인 재론(再論) — 분단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 『4.3과 역사』 19호, pp.89-105.
- 발표: 제주4·3 제71주년 기념 학술대회 (2019.10.11)
- ISSN: 1599-3345
문경수의 주요 저작
- 문경수 (2007). 『재일조선인과 아이덴티티』 (일본어 저서)
- 문경수 (2001). 「4·3과 재일 한국인」, 『4.3과 역사』 창간호 (제주4·3연구소)
관련 참고문헌 (논문에서 인용)
- 泉靖一 (1953). 『民俗学と民族学』
- 竹前栄治·中村隆英監修 (1996). GHQ 점령기 한국인 기록
-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2003)
- 김시종 (2016). 밀항 증언
- 金本春子·金性鶴 (2004). 여성 밀항자 HARUKO 기록
주석
이 통합 분석 페이지는 문경수의 두 논문(2017, 2019)을 입수 순서가 아닌 논점의 심화 순서로 재구성했다. 2017년 논문이 1947년 외국인등록령의 제도적 억압을 분석한다면, 2019년 논문은 그 억압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현재”를 포착한다. 두 논문을 함께 읽을 때, 4·3은 제주도 내 사건이 아닌 동아시아 냉전 구축 과정의 일부이자, 재일동포사회의 분화된 기억과 침묵 속에서 지금도 진행 중인 사건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이 두 논문의 저자 문경수는 리츠메이칸대학 소속으로서 일본 내 제주4·3 연구의 중심축이며, 한국과 일본 양국의 학술 교류와 초국적 기억 운동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페이지는 단순한 “소스 정리”가 아닌 한일 관계사와 냉전 기억 연구의 새로운 인식 지평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